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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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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사선사고 및 상해유형
  • 방사선 사고 사례

전신 방사선피폭에 의한 의료 임상실례

1) 핵무기 관련 방사선 사고

(1) 일본 원자폭탄 투하

① 서론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36만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히로시마 상공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 원자폭탄은 공중에서 폭발하여 섬광과 열 폭풍을 일으키고 순식간에 시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폭발중심 반경 1 km이내의 사람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1.6 km이내에서는 고도의 화상으로 즉사하였으며 4 km이내의 사람들도 중화상으로 얼마 뒤 사망했다. 76,000동의 건물 중 48,000동이 완전히 없어지고 22,000동이 파괴되어 시 전체의 90%의 건물이 파괴되었다. 폭풍은 초속 3,200 m로 태풍의 100배였다. 곧이어 나가사키에 제 2의 원폭이 투하되어 히로시마 약 14만 명, 나가사키에 약 7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② 피폭자에 대한 초기 영향(급성 방사선증후군)

방사선의 초기 영향에는 급성 방사성증후군이 있다. 급성 방사성증후군의 증상에 관한 정보는 주로 1956년부터 1961년 사이에 10만 명 이상의 원폭 피폭자를 면접하여 얻어졌다. 여기에서 얻은 초기의 영향에 관한 기록들은 피폭자의 고통을 동반하는 악몽과 지극히 주관적인 10여 년 전의 기억들이므로 편향적일 수 있다.
원폭 투하 후 수일에서 수주 사이에 과 피폭된 생존자들은 발열, 오심, 구토, 식욕부진, 혈변, 탈모, 자반 및 점막출혈, 구강과 인후의 따끔거림(비인두 궤양), 잇몸의 위축 및 궤양(괴사성 치은염)을 경험하였다. 증상의 발현시기는 다양하였으나, 대체로 피폭선량이 많을수록 빨리 나타났다. 구체적으로는 구토(수 시간 이내에 일어나지만 이유는 잘 모름), 설사(장 표면을 유지하는 세포의 손상), 혈액 세포수의 감소(골수 중 조혈줄기세포 손상), 출혈, 탈모(모근 세포가 손상을 받아 머리카락이 가늘게 되고 접히게 됨. 탈모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빠지는 것이 아니라 접힘), 일시적 불임, 수정체 혼탁 등이 있다. 이들 증상이 일어나는 것은 구토를 제외하고 세포 분열과 깊은 관계가 있다. 분열하지 않는 세포(근육이나 신경)와 비교하면 분열을 반복하고 있는 세포 (골수나 장 표피 세포)는 방사선에 매우 약하기 때문이다. 방사선량이 적으면 이들 증상이 모두 나타나지는 않고 일부만 나타나며 방사선량이 많으면 1-2개월 후에 골수 부전에 의한 증상으로 사망하고 피폭선량이 아주 많으면 10-20일 후에 장관증상으로 사망했다.
피폭자가 말한 방사선의 급성 증상들 중에서 탈모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보고이다. 즉, 구토, 잇몸출혈, 설사 및 자반 같은 다른 증상보다도 보다 객관적으로 기록된 증상이다.

급성 방사선증후군은 저 선량 피폭에서는 나타나지 않으며 역치(threshold)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어느 방사선량 이하에서는 급성 방사선증후군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치가 없는 선형선량반응 이론과 대조적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방사선량이 증가할수록 질환의 발생 가능성은 높아지며, 방사선에 의한 방사선 발암이 좋은 예이다.
중증 탈모(3분의 2이상의 두발의 탈모)를 보고한 사람의 비율과 추정 피폭선량의 관계를 보면 방사선의 량이 1 Gy정도까지는 거의 증가되지 않다가 그 이상의 량이 되면 중증 탈모를 일으킨 사람의 비율이 점점 증가한다. 5 Gy이상에서 비율이 떨어지는 것은 피폭선량이 과다 추정된 사람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5 Gy이상의 피폭자에서 생존자는 몇 안됨). 방사선의 피폭은 인터뷰의 결과에 의존하여 폭발 중심지에서의 거리나 건물의 구조 등을 고려하여 계산하고 있지만 피폭 장소의 기억이 정확하지 못한 이유로 정확한 피폭선량의 계산에 오차가 많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③ 방사선에 의한 급성 사망

방사선에 의한 급성 사망의 확률은 방사선 피폭량과 관계가 있으나 단순한 정비례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 가지 수치로서 나타낼 수는 없다. 그래서 집단의 50%가 사망하는 방사선량을 지표로 삼고 있으며 또한 60일 이내의 사망을 급성 사망으로 취급한다. 즉, 급성 방사선 치사량(Lethal Dose)은 LD 50/60으로 나타낸다. 방사선피폭으로 집단의 50%가 사망하는 주된 이유가 골수손상에 의한 면역기능의 파괴(감염에 의한 패혈증)로 생기며 2개월이 경과하면 골수는 회복하기 때문에 2개월 이후의 사망은 급성 사망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폭발 중심에서 가까울수록 폭풍에 의한 가옥의 붕괴, 잇따라 생긴 화재의 영향도 강했으므로 엄밀하게는 방사선피폭에 의한 사망과 외상, 화상에 의한 것을 구별하는 것은 어렵다. 따라서 초기조사에서는 살아남은 사람의 면접을 통해서 50%의 사람이 살아 남았다고 생각되는 폭발중심으로부터의 거리를 구했으며 히로시마에서는 1,000-1,200 m, 나가사키에서는 1,000-1,300 m라는 결과가 보고되었다. 그러나 건물에 의한 방사선 차폐의 고려가 충분하지 않았으므로 방사선 피폭선량의 추정은 할 수 없었다.
방사선영향연구소(RERF, Radiation Effects Research Foundation)에서는 과거에 행해진 광범위한 면접 기록을 기초로 히로시마의 폭발중심에서 1,600 m 이내 약 2,500채의 일본식 가옥에 있었던 7,600여명의 피폭자가족 등에 관한 정보를 추출했다. 그리고 같은 가옥에서 피폭되고 살아남은 사람과 사망한 사람의 집계에 기초를 두어 골수에 2.7-3.1 Gy의 방사선을 조사 받은 경우에 50%의 사람이 2개월 이내에 사망했다고 추정했다. 일본식 가옥은 건물의 구조가 거의 같기 때문에 개인의 방사선 피폭선량을 추정하기가 쉬운 편이다.
유엔과학위원회(UN's Scientific Committee)의 보고에서는 주로 원폭피폭 생존자, 방사선 사고 피폭자 및 방사선치료 등의 정보를 기초로 60일 이내에 50%의 사람이 사망하는 급성 방사선 치사량(LD 50/60)을 추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방사선피폭 후 치료를 하지 않는 경우는 골수선량으로 약 2.5 Gy 이상, 만약 충분한 의료가 가능한 경우에는 5 Gy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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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산업용 및 연구용 방사선조사기에 의한 방사선 사고

[ 표 2-6. 산업용 방사선 처리시설에서의 방사선 사고 ]
년도 장소 선원종류 사고결과 추정 피폭선량 비고
1965 일리노이
미국
선형가속기 1명 팔과 다리 절단 290-2400 Gy  
1967 피츠버그
미국
선형가속기 3명의 피폭자 중
1명 양측 손절단
전신 피폭 1-6 Gy 1명 양측 손에 5.9 Gy 안전장치
고장
1974 뉴저지
미국
감마조사기 1명 급성 방사선
증후군
~4 Gy 선원에 피폭됨을 인지
5-10 초간 피폭으로 추정
1975 스티모스
이태리
감마조사기 1명 사망 ~12 Gy  
1977 뉴저지
이태리
감마조사기 1명 급성 방사선
증후군
~2 Gy 선원에 피폭됨을 인지 단시간 피폭으로 추정
1982 켈러
노르웨이
감마조사기 1명 사망 ~22 Gy  
1989 산살바도르
엘살바도르
감마조사기 1명 사망 ~8 Gy 3명중 다른 2명은 전신 피폭 2.9-3.7 Gy
1990 소레크
이스라엘
감마조사기 1명 사망 ~10-20 Gy  
1991 네스비즈
베라루스
감마조사기 1명 사망 ~11 Gy 조사실에서
1분간 피폭
1991 하노이
베트남
선형가속기 한 손과 다른
손의 손가락 절단
~10-50 Gy  
1991 메릴렌드
미국
선형가속기 각 손의 4 개
손가락 절단
~55 Gy  
1991 포바크
불란서
선형가속기 피부 종양 ~40 Gy  

[ 표 2-6. 산업용 방사선 처리시설에서의 방사선 사고 ]

(1) 1999년 일본 토카이무라(東海村)소재 JCO 핵연료 가공공장의 방사선 사고

① 사고의 발생 상황
㉮ 작업의 목적

사고 공장은 핵연료 사이클개발기구(사이클 기구)와의 계약에 기초를 두고, 핵연료 가공시설의 고속 증시로 “조요(常陽)”용 고농축 우라늄(농축도 18.8%, 우라늄 농도 380그램 우라늄/리터(gU/ℓ)인 산화우라늄 용액을 시험동에서 약 160리터(약 60kg 우라늄/리터)로 전환 제조하고 있었다. 제조에 알맞은 1회 작업량은 2.4 kgU/ℓ(용액량 약 6.5리터)씩을 용해하고, 수송의 단위인 6-7회 작업량 분인 약 40리터의 질산우라늄용액을 균일화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이 작업은 special group 이라고 불리우는 5명의 작업원 중 3사람이 하고 있었다(그림 2-5 참조). 또한 special group은 전환 시험동에서의 작업 이외에 제1, 제2 가공시설동의 폐수 처리도 담당하고 있었다.

㉯ 작업 내용

사고 당시 작업은 special group 중 3명이 9월 중순부터 우라늄 정제를 시작하여 9월 28일에 끝냈으며 29일부터 산화우라늄용액의 제조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라늄 분말의 용해공정은 인가된 시설의 용해탑에서 질산을 더해 용해하는 것이 정상 작업이나, 비인가된 10리터 크기의 스텐레스 용기를 사용하여 용해작업을 한 후, 수작업으로 침전조에 주입하였다. 즉 29일에는 4회 작업량(약 9.6 kgU/리터)의 산화우라늄용액, 30일 오전에는 3회 작업량(약 7.2 kgU/리터)의 산화우라늄용액을 주입하여, 침전용 탱크의 제한치인 2.4 kg을 크게 넘는 약 7배인 17 kg을 주입하였다.

㉰ 임계의 발생과 계속

상기의 작업 결과, 9월 30일 오전 10시 35분경, 침전조 내의 산화우라늄용액이 임계에 달하여 경보장치가 울렸다. 임계는 처음에 순간적으로 대량의 핵분열 반응이 일어났고 그 후 임계상태는 정지되었기 때문에 작업이 이루어질 때까지 약 20시간에 걸쳐 완만한 핵분열상태가 계속된 것이었다. 임계의 지속 상태를 정지시키기 위해서 10월 1일 오전 2시 30분 무렵부터 임계의 지속을 조장하고 있던 침전조 주변 쟈켓에 흐르는 냉각수를 빼내는 작업을 관계자의 협력을 얻어 JCO의 직원들이 실시했으며, 오전 6시 15분 무렵, 임상물을 주입하고, 오전 8시 50분에는 임계의 끝이 최종적으로 확인되었다. 이 임계에 의한 총 핵분열 수는, 침전조로부터 채취된 질산우라늄용액을 일본 원자력 연구소에서 분석한 결과 2.5 × 1018로 평가되었다.

그림2-5, 토카이무라, 일본 JCO 핵연료 처리사업소의 방사선 사고 시 작업 상황도 다음 그림은 일본 토카이무라 소재 JCO 핵연료 가공공장에서 발생한 방사선 사고를 재분석한 상황도이다. 이는 사고 시 작업자의 작업상황, 이동동선, 방사성물질과의 거리를 순차적으로 설명하는 그림이다. 사고 시 작업자들의 위치는 두 명은 침전조에 인접해서 작업 중이었으며, 한 명은 침전조가 설치된 작업실 외부에서 대기 중이었다. 침전조에 인접한 작업자 두 명은 사고 직후 작업실을 뛰쳐나왔으며, 작업실 외부에 있던 작업자의 도움을 받아 현장을 빠져 나왔다.

㉱ 선량평가 및 의료대처

이번 사고로 현장에서 작업하고 있던 JCO사원 3명이 순간적으로 발생한 대량의 핵분열 반응에 당시 급성 방사선피폭을 받았다. 두 사람은 침전조에 인접해서 작업 중이었으며, 한 사람은 침전조가 설치된 작업실 외부에서 대기 중이었다(위의 그림 참조). 침전조에 인접한 작업자 두 명은 사고 직후 작업실을 뛰쳐나왔으며, 작업실 외부에 있던 작업자의 도움을 받아 현장을 빠져 나왔다.
한 명은 30분 가량 일과성 의식 상실 및 구토가 있었으며, 나머지 두 사람은 20미터 거리에 있는 제염실을 거쳐,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로 대피해서 구급대 및 소방서에 연락하였다. 의식불명 작업자는 피폭 후 약 70분간 의식장해가 지속되었으며, 피폭 후 70분 후에 설사를 시작하였다.
사고 직후 인근 소방대 및 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하여 피폭자 3명은 구급차로 인근 원전 협약병원에 후송되어 응급조치 후 방사선의학연구소(NIRS, National Institute of Radiological Science)로 후송되었다. 이들 3명의 추정 피폭 등가선량은 각각 18.4 Gy, 10.4 Gy, 2.53 Gy이었다.
NIRS에서는 방사선 사고 발생 연락을 받은 즉시 긴급 의료 대책팀을 구성하여 3명의 과피폭자에 대해 의학적 진단 및 처치를 실시하였다. 중증 과피폭자(18.4 Gy)의 경우 일과성 의식소실 및 중증의 급성 방사선 증후군을 보였고, 소화관, 호흡기, 심혈관 감염에 대한 집중 치료 체제 및 말초 혈액 간세포 이식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동경대 부속병원으로 후송하여 적극적인 치료를 시행하였으나 12월 21일 사망하였다. 중등도의 과피폭자(10.4 Gy)의 경우 중등도의 의식장해 및 중등도의 급성 방사선증후군을 보였으며, 심한 골수억제가 확실시되어 제대혈 수혈의 필요성으로 동경대 의과학연구소로 후송된 후 치료 중 2000년 4월 28일 사망하였다. 경도의 과피폭자(1-4.5 Gy)의 경우 의식은 명료하였으나 경도의 방사선증후군을 보여 NIRS에서 계속하여 경과를 관찰하였다.
과피폭자의 의류, 코 분비물, 구토물 및 혈액, 코인, 휴대전화, 손목시계에서 24Na 등 방사선화합물이 검출되었으며 희유가스가 외부환경에 유출되었으나 옥소, 우라늄의 방출은 없었고 피폭원은 중성자 및 감마선이었다. 중증 과피폭자는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았으나 사고 83일째 사망했으며 중증도 과피폭자는 조혈기능부전에 대한 치료성공으로 회복되었으나 결국 반복되는 감염으로 사고 211일째 사망하였다. 경도의 과피폭자는 의학적인 경과 관찰로 보아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이 외 56명의 피폭이 확인되었고 그 중 36명은 전신 방사선검출기로 검출되었고 그 값은 0.6-64 mSv(잠정값)이었다. 또, 필름배지의 측정결과에서 22명이 확인되었고, 그 값은 0.1-6.2 mSv(1 cm 선량당량) 감마선이었다. 또한, 필름배지에서 검출된 22명중 2명은 전신 방사선검출기에서도 검출되었다.

또한, 임계상태의 정지를 위한 작업 등에 종사한 JCO사원 24명에서 피폭이 확인되었고, 전신 방사선검출기에서 검출된 값은 9.1-44 mSv(잠정값)이었고 포켓선량계에서 측정된 값은 0.03-120 mSv(1 cm 선량당량) 이었다.
사고발생시에 JCO 동해사업소 내에 있던 회사원, 관련회사의 사원 중에는 원자로 등 관계법규에 정해져있는 필름배지를 착용하고 있지 않았던 사람도 있었고 사고 후 시설 내에서 필름배지를 방치한 사람도 많았으며 또한 방사선 업무 종사자로 등록되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동해 마을 소방서, 사이클 기구, 원자력 연구소등의 방재 업무 관계자 등도 피폭이 확인되었지만 그 선량은 방재 업무 관계자의 피폭선량의 상한치인 50 mSv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사이클기구 및 원자력 연구소의 직원에 대해서는 개인선량계의 측정값으로부터 피폭선량이 평가되었는데, 검출 한계를 넘은 사람이 각각 49명, 8명이었다. 또, 사고에 대응하기 위해 JCO사원 3명의 구급활동을 한 동해마을 소방소원 3명에 있어서도 6.2-13 mSv(잠정값)의 피폭이 확인되었다.

② 결론

JCO 임계사고에 의한 방사선 사고는 방사선 피폭사고 처리에서 현장, 1차 협약병원 및 2차 전문 의료기관(NIRS)에 이르기까지 신속한 의학적 처치가 이루어졌다. 사전에 방사선 사고에 대한 응급의료 네트워크가 구성되어 있어, 즉각적인 선량평가 및 의료조치가 가능하였으며, 과 피폭자에 대한 골수이식 등 집중적인 생명구호 조치가 가능하도록 동경대학병원 등과 연계되어 동종 사고 대응체계 수립에 중요한 모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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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원폭 이외의 대형 방사선 사고

(1) 1986년 Chernobyl 원자력발전소 화재로 인한 방사선 사고

① 사고 경위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의 4번 원자로에서 전기제어시스템에 관한 실험을 하고 있었다. 실험의 목적은 전기정전 상황에서 원자로의 안전을 평가하는 것이었다. 원자로는 냉각을 시키기 위해 냉매를 순환시키는데 이 때 펌프를 돌리기 위해 전기를 소모한다. 평상시 여기에 쓰여지는 전기는 원자로 자체에서 공급하나 정기적인 일시정지를 시킬 경우에는 다른 전력공급원을 필요로 한다. 이 때 디젤 발전기를 가동시키는데 당시 체르노빌 발전소에서 사용하던 디젤 발전기는 가동시키는데 시간이 걸렸다. 만일 불시에 원전의 가동이 중단되면 이 사이의 시간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터빈의 관성에서 나오는 전력을 이용해 보려고 실험을 한 것이다. 당시 사건의 재구성은 조사자들 마다 다른데 최근까지 모여진 정보에 의해 순서대로 재구성해 보았다.
새벽 1시 24분 수증기의 폭발과 연료증기의 팽창에 의한 폭발로 원자로의 뚜껑이 날아갔다. 곧 공기가 흡입되면서 가열된 흑연 제어봉이 일산화탄소로 산화되면서 불이 붙었고 원자로에 화재가 발생했다. 140톤의 연료 중 8톤이 대기 중으로 방출되었고 여기에는 플루토늄과 그 밖의 고에너지 방사성 물질(핵붕괴 산물)이 포함되어 있었다.

② 사고의 개괄 및 영향

체르노빌 핵발전소에서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3분 굉음이 울렸다. 구소련의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 공화국의 수도 키에프시(당시 인구 25만 명)에서 북쪽으로 약 130 km 떨어진 체르노빌에서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최대의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가동 중이던 체르노빌 핵발전소 4호 원자로(100만 kw급)가 폭발하여 콘크리트 건물은 천장이 날아가고 외벽이 붕괴된 채 화염에 휩싸였고 원자로 내에 있던 방사능 물질은 폭발바람을 타고 유럽을 비롯한 전세계에 퍼져나갔다.
당시 구소련 정부는 사고 후 3일간이나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를 비밀에 붙였고 체르노빌로부터 약 천 km 이상 떨어진 스웨덴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은 양의 방사성 물질이 검출됨으로써 사고가 추정되었다. 이 사고로 방출된 방사능 양은 최소한 10억 Ci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히로시마 핵폭탄 투하로 인한 방사능 방출량의 5백 배에 해당한다. 사고 후 현재까지도 체르노빌 주변 반경 30 km지역은 출입이 금지되고 있고 반경 300 km가 오염지역으로 출입이 제한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방사능 물질은 기류를 타고 유럽을 중심으로 북반구 전체에 퍼졌다. 체르노빌에서 8,000 km나 떨어진 일본에서도 사고 후 빗물, 야채, 우유에서 기준치 이상의 방사능이 나올 정도였다.

체르노빌 사고는 유럽을 한동안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갔다. 사고가 나기 전 유럽의 방사능 허용기준치가 0.2 Bq이었는데 사고 후에는 600 Bq로 개정되었다. 3천 배나 높아 진 것이다(우리나라의 허용치는 370 Bq). 방사능 낙진으로 인해 오염된 풀을 먹은 젖소의 우유도 오염되고, 들판에 널려있는 야채는 물론이고 모든 토양이 오염되어 깊게 갈아엎은 후에도 한동안은 경작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결국 이런 높은 허용기준치를 정하지 않으면 유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서 식량폭동이 일어날 상황이었던 것이다.

체르노빌사고의 경제적 손실도 엄청났다. 구소련은 사고 후 3년이 지난 1989년의 국가예산에서도 사고 후 처리비용으로 무려 80억 루블(우리 돈으로 약 12조7천억 원)의 경비를 상정했다. 정치적으로도 체르노빌사고가 구소련 붕괴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많은 국제 정치학자들의 지적이다.

③ Chernobyl 사고의 피폭자 분류
  • ㉮ 발전소직원 소방구급대원 등 499명이 경과관찰을 위해 일시적으로 병원에 수용되었다.
    사고 당초에 포함된 수십 명은 수천 mSv(수 Sv)에 달하는 치사량의 선량을 받았다.
    l Sv 이상의 피폭을 받은 사람은 255명이 있었다.
  • ㉯ 출입금지 지역이라고 지정된 30 km 권내(총면적 4,300 ㎢)의 주민 11만6000명(그중 l0%의 사람이 50 mSv를,
    5%의 사람이 100 mSv 이상을 피폭 받음. 피부피폭 선량은 100-200 mGy로 추정)
  • ㉰ 사고 영향의 경감에 관련된 활동에 종사하였다고 해서 등록되어 있는 사람이 약 60만-80만 명이며 특히, 동원되어
    발전소의 제염과 기능회복에 노력한 사고처리 작업자(평균 피폭 선량은 100 mSv, 10% 정도의 사람은 250 mSv,
    5%의 사람은 500 mSv를 초과했음)의 20만명을 포함하는 집단이다.
  • ㉱ 그 후의 조사로 추가된 오염지구 (5-40 Ci/㎢)거주자 82만5000명의 집단.
④ 급성 방사선증후군

체르노빌 사고의 주된 피해는 방사성 물질의 방출이었다. 화상과 외상을 당한 사람은 한 명에 불과했다. 24Na 방출도 없어 중성자 피폭도 없었다. 초기 피부의 방사선 화상은 주로 베타선과 투과력이 약한 감마선에 의한 것으로 수분에서 수 시간 정도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베타선과 감마선의 에너지, 선량, 노출시간 등 환자 개개인에 대한 당시 노출 조건은 알려져 있지 않다. 사고 수일 후 내부오염에 대해 조사한 것에 따르면 0.01-0.1 Gy 정도인데, 이 범위에서는 급성 방사선증후군이 나타나지 않는다. 전신 감마선 피폭선량은 림프구의 염색체 조사에 의해서만 가능했다.

㉮ 전구 증상

가장 심한 환자들은 사고 15-30분 후에 구역과 구토를 시작했다. 24시간 뒤 피로, 발열, 설사, 피부와 점막의 발적, 침샘의 부종, 림프구 감소 (< 1000 개/mm3)가 나타났다. 구토의 시작 시기는 피폭선량과 무관했으나 선량률과는 좋은 관계를 보였다.

이상의 전구 증상들은 급성 방사선증후군을 일차 선별하는데 충분히 예민하여, 사고 36시간 후 모스크바 병원에 이송된 128명의 환자는 한 두가지의 전구증상을 보였는데 이들 중 99명이 급성 방사선증후군으로 판명되었다. 체르노빌 사건의 경험으로 전구 증상에 대한 치료의 발전은 없었으나 차와 비행기 등 수송으로도 심한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 골수 증상

모스크바 제6병원에 있는 115명의 환자 전부를 포함하여 1-10 Gy사이를 피폭 받은 환자들을 피폭량에 따라 다른 군으로 분류하여 중성구, 혈소판, 적혈구 평균치의 시간에 따른 변화를 관찰하였다.

0.1-0.6 Gy 피폭선량에서는 피폭 4-5주 후에 중성구, 혈소판, 적혈구 수가 정상범위의 하한 정도로 약간의 감소만 보였다. 다음 선량군인 0.6-1.5 Gy 피폭 선량군은 중성구와 혈소판이 좀 더 감소하여 피폭 후 30일 정도에 하한치를 보였다. 세 가지 혈액 세포 모두 피폭선량이 많으면 더 빨리 더 많이 감소했고, 1-7 Gy사이에서는 선량이 많을수록 골수의 회복도 빨랐다. 그러나 이 이상의 선량에서는 반대로 선량이 높을수록 회복이 느렸다. 체르노빌의 경험에 의하면 9 Gy까지의 피폭은 자연회복이 가능했다.

㉰ 백혈구 감소에 의한 발열과 감염

1-2 Gy의 피폭을 받은 환자군에서는 12%에서 발열이 있었다. 발열의 빈도는 선량이 4-5 Gy 로 증가하면서 70-80%로 증가하고 5-6 Gy에서는 100%에서 발열이 있었다. 발열의 시점은 모든 환자에서 중성구가 500 개/mm3이하로 떨어지는 것과 일치했다. 이는 소위 무과립백혈구 발열(agranulocyte fever)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1-5 Gy의 선량에서는 원인 불명열(FUO)의 비중이 컸다. 26명의 무과립백혈구 발열환자 중 7명만이 감염이 밝혀졌고 이들도 주사부위의 정맥염, 단순포진, 치질악화 등의 약한 표재성 감염이었고 1명에서만 편도염이 확실했다. 4-5 Gy군에서는 발열과 감염이 백혈구가 없는 시기와 일치했고 발열은 광범위 항생제로 소실되었다. 이들에서 혈액배양을 자주 시행하였으나 패혈증의 증거는 없었다.

1-5 Gy사이의 환자군에서 감염으로 사망한 예는 없었다. 4-5 Gy군에서 두 명이 사망했는데 1명은 사고 후 21일 째 anaphylactic shock으로 사망했고 다른 1명은 HLA가 다른 골수이식을 하였는데 이식편대숙주 반응(graft-versus-host reaction)으로 사망했다. 두 환자의 부검 역시 패혈증의 증거는 없었다.
5-6 Gy군에서는 모든 환자에서 심한 발열이 있었고 항생제에 의해 호전되지 않았다.

㉱ 장관증상

5-6 Gy 환자군에서 8명 중 1명이 설사 증세를 보였다. 6-7 Gy군에서는 4명 중 3명이 설사를 했고 심한 편은 아니었으며 사고 후 15-17일 째부터 시작해 22-25일간 지속되었다. 피폭선량이 높을수록 설사 빈도가 증가했고 시작하는 시기도 짧아졌다. 7-9 Gy의 선량군에서 6명 중 4명이 피폭 후 6-11일 째부터 설사가 시작되었고, 11 Gy 이상의 군에서는 6명 모두가 피폭 후 5-8일 째 시작되었다.
5-7 Gy 선량군에서는 설사의 원인으로 장점막의 무과립백혈구 감염에 의한 손상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7-9 Gy 선량군 혹은 그 이상에서는 일찍 시작되는 설사의 원인이 장관의 급성 방사선손상이었던 것으로 생각되었다.

㉲ 출혈

혈소판감소증에 의한 출혈 혹은 다른 원인의 출혈로 생명을 위협받은 환자는 없었으며 혈소판감소증이 온 환자들에게 혈소판 수혈을 했기 때문에 출혈을 예방했을 가능성이 있다. 혈소판감소증이 심한 환자들에게 하루에 5-6차례의 혈소판 수혈이 필요했으며 이 때의 경험으로 미루어 혈소판 수혈이 출혈 예방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되었다.

⑤ 골수이식
㉮ 골수이식 증례

4.4-13.4 Gy를 피폭받은 총 13명이 골수이식을 받았으며 이 중 7명이 심한 피부화상 및 장관손상으로 피폭 후 25일 내에 사망했다. 따라서 이 경우에 골수이식의 결과를 평가하기는 불가능하다. 나머지 6명이 피폭과 골수이식 후 1개월 이상 살았으며 이중 4명은 죽고 2명은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두 명은 5.6 Gy와 8.7 Gy를 피폭 받았고 처음에는 거부반응을 보였으나 자신들의 골수재생으로 회복되었다. 죽은 4명의 사인은 골수이식과 관련 있을 가능성이 높다.

4.0-6.5 Gy 선량군에서는 감염이나 피부화상으로 인한 원인으로 사망한 경우는 없었으며 5-9.0 Gy 선량군에서는 아마도 동종 골수이식이 이환율 및 생존율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다.

㉯ 결론

Chernobyl의 경험으로 급성 골수증후군의 처치에 몇 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 ⓐ 감마선에 의한 전신피폭으로 생긴 급성 골수증후군에서 9 Gy까지의 피폭환자들은 회복이 가능하다.
  • ⓑ 1-5 Gy 선량군에서 잘 생기는 무과립백혈구 감염환자들은 항생제치료로 잘 조절할 수 있다.
  • ⓒ 5-6 Gy 선량군에서는 세균, 진균 및 바이러스 감염이 잘 생기며 항생제와 항바이러스제의 동시 투여가 필요하다.
  • ⓓ 9 Gy 이하의 선량군에서는 아마도 동종 골수이식이 이환율 및 생존율에 나쁜 영향을 주며 9 Gy 이상의 선량군
    에서만 동종 골수이식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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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87년 Goiania, Brazil 방사선치료기 선원(137Cs)에 의한 방사선 사고

① 사고 경위

1987년 9월 13일 브라질의 Goiania시에서 두 명의 고물수집상이 폐업한 병원에서 방치해두었던 방사선치료기의 머리 부분을 뜯고 50.8 TBq의 137Cs 소스를 카트에 실어 자기들 거주지로 가져간 사건이 있었다. 그들은 이 기구를 분해하고 드라이버로 소스를 파내 주변에 흩어지게 하였다. 9월 18일 까지 이 기구는 현장에 방치되어 있다가 소스가 들어 있는 캡슐을 A라는 사람이 사서 자신의 고물집하장에 옮겨 놓았다. 그날 밤 A는 캡슐에서 밝은 형광이 보이는 것을 보고 자기 집으로 가져와 친척, 친구, 이웃사람, 구경꾼들에게 자랑했다.

9월 21일 그들은 소스를 작게 분해하려고 시도했으며, 실제로 작게 만들어서 주머니에 넣어 각자 집에 가져가 다른 사람들에게 기념품으로 나누어주었다.

9월 28일 A의 부인이 자신과 주변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구역, 구토, 설사, 식욕부진 등 위장관 증상과 기운이 없고 발열, 화상 증상이 있어 자기 남편이 구입한 빛나는 물체와 관련된 것임을 의심하여 자기 남편 고용인의 도움을 받아 소스가 들어 있는 용기를 가지고 버스로 시 보건과에 오게 되었다. 보건과 직원이 이를 독성 물질로 파악하고 119를 불렀으며 다음날 의사와 보건물리학자가 방사성 물질임을 발견하고 원자력기구에 연락하게 되었다.

② 진료 현황 및 경과
㉮ 급성 방사선증후군

환자분류를 보면 주변 인구 112,800명이 올림픽 스타디움에 모여 방사선 오염검사를 받았으며 129명은 내부와 외부오염이 있었고 120명은 의복에 오염이 있었다. 20명이 급성 방사선증후군으로 입원하여 17명이 골수억제의 소견을 보였고 그 중 8명은 심한 골수억제가 나타나 4명은 사망하였다. 또 28명에서 국소 피폭으로 다양한 정도의 방사선 화상이 있었는데 4명의 환자는 신체 일부를 절단해야 했다. 내부오염이 있는 사람들은 제거를 위한 치료를 하였다.
이 사고의 급성 방사선증후군 환자들은 골수 증상기만 관찰되었고 다음과 같은 의료처치를 받았다.

  • ⓐ 역격리 입원시킴.
  • ⓑ 익히지 않은 채소와 요리하지 않은 음식은 식단에서 제외함.
  • ⓒ 손톱과 발톱을 깨끗하게 자르고 소독함.
  • ⓓ 콧속에 neomycin 연고를 바름.
  • ⓔ 호중구가 1.5 x 109/ℓ 이하일 때 trimethoprim / sulfamethoxazole / nystatin을 경구 투여하여 장관 멸균함.
  • ⓕ 열이 38.50C 이상으로 오르거나 무과립백혈구 환자(<0.75x109/ℓ)에서 감염이 의심될 때 복합항생제
    투여(IV gentamycin, cephalotin 및 carbenicillin을 주다가 cefoperazone, imipenem +/- piperacillin으로 교체)
    함. 항생제 투여에도 불구하고 열이 48-72시간 이상 계속되면 amphotericin B 투여.
  • ⓖ 과립백혈구 감소증이 생긴 10명 중 자연적인 골수재생을 보이지 않은 8명에게 사고 후 35일 째 RhGM-CSF
    (용량 : 500 μg/m2/일로 24시간내 주사)를 투여하기 시작했고 호중구가 3일 이상 계속 > 2.0 x 109/ℓ이면 용량을
    50% 줄여 치료함.
  • ⓗ 혈색소가 10 g/dℓ 이하, 혈소판이 20 x 109/ℓ 이하 혹은 혈소판이 60 x 109/ℓ 이상이면서도 출혈이 있었던 7명에게
    방사선조사한 적혈구와 혈소판을 수혈함.
  • ⓘ 피폭 3주 후 포진 바이러스의 활성을 예방하기 위해 acyclovir를 투여함.
  • ⓙ 변검사의 결과에 따라서 또는 호산구가 증가되어 있으면 기생충약(thiabendazole과 mebendazole)을 투여함.
    RhGM-CSF를 투여 받은 8명 중 4명은 그람음성 패혈증으로 치료를 시작한지 6-9일 째 사망했고 그 중 2명은 내부
    출혈이, 다른 2명은 폐렴이 직접적인 사인이었다.
㉯ 내부 오염

내부오염을 확인하기 위하여 오염이 의심되는 사람들에게서 체외 검체(대변과 소변)와 체내검사(전신 감마선 검출)가 사용되었다. 연령별 대상 모델이 흡입과 조사량의 평가를 위해 사용되었는데, 실험적 데이터와 비교적 일치하였다. 초기 검사는 소변의 방사선량을 측정하였는데, 방사선량이 매우 높아 휴대 방사선검출기로도 측정이 되었다. 개인 흡수량과 평생 예탁선량 피폭량 등을 추정하기 위하여 수학적 모델을 사용하였다. Prussian blue란 약이 내부오염제독을 위해서 투여되었는데, 이는 137Cs을 대량으로 배설시킨다. 소변과 대변의 검체를 모아서 이 약의 효과를 평가하기 위한 검사를 시행하였다. 전신 감마선 검사를 위해 NaI 검출기를 설치하였는데, 95% 확률로 9.1 kBq(247 mCi)이 나왔다. 600명 이상의 사람이 이 검사를 받았다.

체외검체 검사는 내부 오염을 걸러내는데 도움을 주고 오염제거 치료의 효과판정에도 도움을 준다. 이동 가능한 전신 감마선 검출기는 치료의 효과를 판정하는데 훌륭한 구실을 하였다. 연령별 대사모델은 흡수량과 피폭량을 추정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이는 가상검사에서 나오는 것과 실제 환자에서 나온 값이 잘 일치함을 보여주었다. 3 g/day 이하의 Prussian blue는 치료효과가 없었다.

㉰ 결론

피폭자들의 교육 수준은 낮고 무지하였으며 법적 제재를 두려워하여 방사선에 노출된 상황을 재구성하기가 어려웠으므로 피폭선량의 측정은 생물학적 검사에만 의존하였다.

이 사건의 특징은 ⓐ 핵무기나 원전사고가 아니라도 불특정 다수에게 방사능 피폭이 되는 사고가 있을 수 있고, ⓑ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방사선에 노출되고 이 사실이 지연 발견되며, ⓒ 피폭자들의 무지뿐 아니라 협조가 불량하여 노출상황을 재구성하기 어렵고, ⓓ 전신 피폭, 국소 피폭, 내부 오염, 외부 오염 등 여러 형태로 혼재되어 있다는데 있다. 의학적 교훈으로는 사망한 모든 환자의 사인이 감염과 관련되어 골수억제환자에서 감염의 통제가 가장 중요하며 137Cs의 내부오염 제거에 Prussian blue의 효과가 입증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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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사고 사례

1) 1999년 김해공항 방사선 사고

2월 20일(토) 21:00경 대한항공 김해공장에서 200 KVP X선 발생장치를 이용하여 Airbus 항공기 날개의 엔진주변 볼트조인트 피로에 의한 균열 검사를 실시하던 2명 (A 33세, B 41세)은 2회의 촬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3회 촬영을 준비하였다. 촬영 준비는 날개 속으로 들어가 먼저 촬영한 필름들을 회수하고 새 검사 부위에 노출용 필름들을 부착한 후 날개 하부로 내려와 X선 빔 방향을 새 촬영부위에 맞추는 작업이었다. 약 3분의 필름 회수 및 부착 작업을 마친 A가 먼저 내려와 레이저 스틱을 이용하여 빔방향을 정렬하였다(약 1분 소요). A가 정렬을 마치고 회수한 필름들을 암실로 가지고 간 후 B가 날개로부터 내려와 다시 정렬작업을 마친 후 10여 미터 밖의 제어기로 가서 노출을 개시하려다 보니 X선 발생장치가 이미 작동 중임을 발견하여 피폭을 인지하였다. 전회 측정에서 노출 타이머가 잘못된 것으로 판단되었으나 실험결과 제대로 작동되어 이후 약 30분간 나머지 촬영을 마치고 귀가하였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불의의 피폭을 받았음은 인지했으나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여 사실을 보고하지도 않았다. 작업 당시 두 사람 모두 개인선량계를 착용하지 않고 있었다.

3월 1일 A의 손가락에 수포가 생기고 통증이 있어 지역 병원에서 화상치료를 받았으나 본인이나 의사 모두 그것이 방사선 화상임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3월 8일 동료 작업자 B의 손에도 유사한 증세가 나타났을 때 비로소 그것이 방사선 피폭에 의한 것으로 판단하여 회사에 보고함으로써 사고가 밝혀졌다. 회사는 두 사람을 항공보건원 및 부산 백병원에 입원시켜 치료하다 궤양이 발생하는 등 증세가 악화되자 3월 15일 원자력병원으로 이송하였고 두 명 다 성형외과와 재활의학과의 치료를 받고 그 중 한 사람의 화상부위는 피부이식 이후 회복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작업자의 진술과 방사선작업장의 실측을 바탕으로 평가한 두 사람의 피폭선량은 A가 손에 50 Gy, 유효선량 1.1 Sv, B는 손에 25 Gy, 유효선량 0.8 Sv 정도로 나타났다.

2) 방사선피폭환자 국내 사례

2009년 3월 5일 만 25세 남자 환자가 방사선에 피폭되어 사업장 직원 2인과 함께 한국원자력의학원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 응급실로 내원하였다. 내원 당시 전신적 활력징후나 신경학적 문제는 보이지 않았고 다른 부위의 상해도 관찰되지 않았으며 손끝이 따끔거린다는 호소를 하였으나 육안으로 관찰되는 피부이상은 보이지지 않았다.

(1) 사고 경위

입사한 지 채 얼마 되지 않은 신규 종사자였던 환자는 2009년 3월 3일 24시경 파이프 균열을 알아보는 방사선 조사 작업을 시행중이었다. 개인선량계를 착용하고 있었으나 작업 중(선원이 장치내로 회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알람이 울리자 경험이 많은 동료가 환자의 개인선량계가 고장 난 것으로 오인, 전원을 끄고 작업을 진행하도록 하였다. 환자는 장소를 옮겨 다른 파이프의 균열 검사를 계속하고 있었다. 선원을 장치내로 회수한 후 선원 앞에서 필름을 교환하는 작업을 하고 있던 중 다른 동료가 환자 근처로 이동하자 동료의 알람이 울렸다. 이에 작업을 중단하고 조사기 상태를 확인하였다.

선원 유도장치를 반대로 조작하여 방사선이 노출되고 있는 상태에서 환자가 작업한 것으로 추정하고, 이후 환자의 작업은 중단시켰다. 환자는 작업 후 30분에서 1시간 정도 오심을 느꼈으며, 손가락 부위에 따끔거리는 증상이 지속되어 3월 4일 아침 파티마 병원과 대한산업안전보건협회를 거쳐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를 방문하였다. 산업안전보건협회의 혈액검사 결과는 정상이었다.

(2) 실시 검사

  • ① 혈액검사 : CBC, Adm, LFT 등 8회 (피폭 2일, 5일, 7일, 9일, 10일, 16일, 23일, 30일)
  • ② Chest PA, 3-Phase Bone Scan, MRI(both hands)
  • ③ 염색체검사 : 불안정형염색체 분석법(FISH) 2회 (피폭 6일, 35일)
  • ④ 안과 검사 (Funduscopy, Tonometry, Refraction)
  • ⑤ 균 배양 검사

(3) 선량 평가

  • ① 임상적 추정 선량
    • ㉮ 전신 선량 < 1 Gy : 피폭 후 구토증상이 없었고, 오심과 같은 의심스러운 증상만 일시적으로 있었으며 피폭 후
      약 24시간에 시행된 혈액검사에서 이상소견이 없음
    • ㉯ 양측 손 선량 < 10-15 Gy : 피폭 직후 양손의 색조 변화 없어 10 Gy 이하 일 수 있으나 양 손가락 말단의 지속적인
      통증이 있어 8-15 Gy까지도 추정
  • ② 물리학적 예상 피폭 선량 : 사고 재구성을 통해 손의 등가선량은 약 3.8-18.2 Gy, 전신 유효 선량은 약 200 mSV로 추정
  • ③ 생물학적 추정 선량 : 3월 9일 염색체변형검사 결과 0.126 Gy (0.093-0.152 Gy), 4월 7일 검사 결과 0.126 Gy
    (0.093-0.153Gy)로 판정

(4) 경과 및 처방

내원 당일 실시한 Chest PA, 3-Phase Bone Scan, MRI(both hands)에서 특이 소견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혈액 검사 결과도 수치 변화는 있으나 정상 범위 내에 있었고, 따끔거린다고 호소하는 손끝의 증상은 육안으로 관찰되지 않았다.
피폭 10일째부터 손 전체 색이 거무스름하게 변하며 특히 양손 1-3번 손가락에서 끝 마디에서 색 변화가 두드러졌으며 통증으로 진통제 처방을 시작하였다.
피폭 14일째에는 색이 변한 손가락 마디에서 부종을 보이며 당기는 느낌을 호소하기 시작하였고 약 3일간 오심이 지속되었다. 피폭 16일째, 부종이 있는 손가락 마디의 각질화가 동반되었으며, 부종이 증가하였고 구토 증세를 보이며 구내염이 발생하였다. 피폭 23일째, 손가락의 수포가 터지며 각질화가 더욱 진행되고 경미한 자극에도 통증 호소가 심하여 마약성 진통제가 처방되었다. 수포가 터지며 발생한 궤양에 세균 배양검사를 실시하였으나 다행히 결과는 no growth로 나타났다.

(5) 혈액 세포 추이

그림 1-5. 서베이미터를 이용한 선량률 측정결과

그림 1-5. 서베이미터를 이용한 선량률 측정결과

(6) 환부 사진

환부 사진 양쪽 손가락의 피부색이 거무스름하게 변했으며 1-3번째 손가락 말단은 부종과 궤양,각질이 생겼다.
왼쪽 1-3번 손가락 끝마디의 각질과 궤양이 심하며 특히 2번 손가락은 수포가 터지면서 궤양이 생겼다. 세포 재생으로 인한 치유가 되지 못하고 계속 각질과 궤양이 반복되는 양상을 띤다.

(7) 결과

방사선피폭으로 인한 급성 전신 증상은 보이지 않으나 국소피폭을 당한 양쪽 손가락 말단의 방사선 화상이 계속 진행되었다. 피폭 35일 검사결과를 끝으로 환자의 통원이 가능한 인근 대학병원에 화상 치료와 피부이식을 의뢰함으로써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의 치료를 종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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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9/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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